[휴앨런] 전쟁과 암호와 스물 바삐 놀던 연필이 긴 한숨과 함께 멎었다. 기지개를 펴느라 한껏 뻗은 손에서 뼈마디가 두드러졌다. 셔츠 목깃에 검지를 넣고 뻐근한 목을 휘 둘러 낸 휴의 시선이, 옆 테이블에 잔뜩 흩어진 종이 더미에 머물렀다. 낙서 같은 톱니바퀴 그림 사이사이로 빼곡한 수식이 들어차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앨런이 설계한 기계의 작동 오류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은 그가 연필을 집어들 적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길었다. 문득, 완전히 지쳐 버린 팔 근육의 찌르는 통증이 그가 연구실에 남아 계산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고 종이 열 장 가량을 해치워 냈음을 일깨웠다. 끄응 하고 낮은 신음을 내며 왼손이 오른팔을 주물렀다. 괘종시계가 열두 번째 종소리를 뱉어냈을 때 존과 피터는 그들 앞에 쌓인 종이를 밀.. 더보기 [레셜] 피로연 2 셜록은 스코틀랜드 야드의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존 없이 경찰청을 찾은 지 2주하고도 반가량이 지났다. 셜록의 구두코가 빠르게 그 몸을 놀렸다. 그에게로 날아드는 시선이 존의 결혼 이후 처음으로 혼자 야드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눈에 띄게 줄었다. 얼핏 보면 일반 회사의 회의실 정도로 보이는 방을 셜록이 습관적으로 휘 둘러보았다. 벽의 메모판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시선으로 스치면서 그들이 지금 풀지 못하고 있는 사건의 개수를 헤아리고는 조소를 흘리던 참이었다. 방 저편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찰 두 명의 작은 말소리가 셜록의 귀로 날아들었다. “거봐, 그 왓슨인가 하는 의사 선생도 결국엔 떨어져 나갈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꽤 오래 버텼는데, 아쉽군 그래.” 웃음을 흘리며 말을 나누던 두.. 더보기 [존셜] 피로연 1 셜록은 뒤에서 들려 오는 웃음소리에 인상을 썼다. 그가 방금 나선 결혼식 피로연장에서는 음악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파티 분위기도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빠져나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가자 그의 뒤로 연회장의 문이 덜컹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음악소리가 흩어졌다. 조금 전까지 귀를 통해 몸 이곳저곳을 쑤셔 대던 소음들이 이젠 아득하게만 들려왔다. 불 켜진 연회장 아래쪽의 거리는 굉장히 조용해서 마치 홀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조용한 거리를 걸어 내려가던 셜록은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더니 저편에 어른거리는 연회장 불빛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신랑인 존이 메리와 함께 춤을 추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지막하게 실소를 흘렸다. 세상..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