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용한 거리를 걸어 내려가던 셜록은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더니 저편에 어른거리는 연회장 불빛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신랑인 존이 메리와 함께 춤을 추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지막하게 실소를 흘렸다. 세상에, 존 왓슨이 결혼이라니. 문득 아까 결혼식장을 빠져나오면서 본 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한 손을 메리의 허리에 얹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존 왓슨의 행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셜록에게 큰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존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느낌이 그를 점령했다. 평소와 다르게 선명한 이미지 대신 추상적인 생각만 꾸물꾸물 피어오르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셜록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존 왓슨이 자신과 함께 생활하면서 행복해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가? 입을 꾹 다물고 존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건 그에게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며 화내던 존, 그 때문에 포로로 잡혀서 연신 욕설을 내뱉던 존,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 어린 눈으로 죽어 있지 말아 달라고 말하던 존뿐이었다. Fuck, 한 마디를 그답지 않은 어투로 중얼거리고는 셜록은 생각을 그만두었다.
분명히 존은 - 마이크로프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 ‘전쟁터’를 원했었고, 자신은 그걸 제공했다. 그러니 존이 즐겁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그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채로 모든 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었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마치 벌집을 들쑤시는 어린아이의 나뭇가지처럼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그런 기분에 익숙하지 않은 셜록은 이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대답을 제시해 줬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잠깐 비틀했다가 이내 균형을 잡은 셜록이 떨리는 손으로 코트 주머니에서 자신의 블랙베리를 꺼내들어 자판을 눌렀다. 화면에 뜬 번호를 응시하다가 자신이 정신이 나갔다는 생각을 주워섬기며 몇 번씩을 머뭇거리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얼마간의 신호음이 지나고 폰 너머로 약간은 놀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웬일이니, 셜록.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마이크로프트.”
“말하렴.”
“존이 결혼했어. 방금.”
잠깐 동안 셜록의 블랙베리 안팎으로 침묵이 흘렀다. 마이크로프트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길게 늘이고만 있었고, 셜록은 한 차례 더 터져 나오는 연회장의 웃음소리에 다시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연회장 소리가 아예 닿지 않도록, 다들 잠들어 있는 조용한 거리 안쪽으로. 셜록이 낡아 깜박거리는 가로등 아래서 걸음을 멈췄을 때쯤에야 마이크로프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고. 하고 싶은 말을 해, 셜록.”
이번에는 셜록이 침묵할 차례였다. 마이크로프트가 마치 어린애를 어르는 듯한 태도로 말할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이고는 했는데, 이번만큼 이게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제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을 거란 것을 이미 눈치 채 버린 것이다. 관저에서 자신의 전화를 받으며 냉랭한 태도로 대꾸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어 길바닥에 폰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정말 짜증나게도, 자신이 정말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존을 제외하면 마이크로프트밖에 없었으니까. 셜록은 평소처럼 차분한 어조로, 하지만 다분히 감정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
“......그래서, 지금 내게 대답을 바라고 말하는 거니?”
“.......”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날아드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셜록은 일그러진 얼굴로 폰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게 전부여서 마이크로프트의 물음 아닌 물음에 대답할 수도 없었고, 단지 제 곁에서 깜박이며 서 있는 가로등에 몸을 기대 지탱할 뿐이었다.
“글쎄,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네가 생각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거라고 말해 주고 싶구나. 답지 않게 말이지.”
“.......”
“언제까지 네게 생긴 빈 공간 하나하나를 내게 채워 달라고 부탁할 생각인 거냐, 어?”
블랙베리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특히나 더 차가워서 셜록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평소의 그라면 뭐라고 한마디라도 받아쳤을 텐데, 지금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입김 섞인 날숨뿐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그로 돌아가, 개를 붙잡고 울고 있는 자신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던 7살 위의 형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속에서는 어린애 같은 생각이 계속 고개를 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게 없었다. 흉터가 욱신거리듯이 머릿속에 레드비어드라는 글자 하나만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쑤셔대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하나 남은 기댈 곳마저 자신을 밀쳐 버렸다는 생각에 셜록은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전화가 끊겨 있다는 것만 간신히 자각할 뿐이었다.
거의 습관적으로 셜록은 발걸음을 플랫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정신병자처럼, 혹은 주정뱅이처럼 비척거리는 걸음이기는 했지만 느리지는 않은 걸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셜록은 더 이상 개를 잃은 소년이 아니었기에 소리 내어 흐느낄 수는 없었다. 단지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눈을 문지르며 연신 마른세수를 해댈 뿐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말대로 그는 존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거였지.
자신은 존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책하고 있었다. 존이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 곁에, 221B에 언제까지나 남아있었으면 했다. 그 감정을 제대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그는 존이 자신의 옆에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당연히 존 또한 그러리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존은 이제 그를 떠났다. 셜록은 그 이유를 발악하다시피 하며 자신 안에서 찾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자신이 더 잘하지 못해서 존은 그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떠났다고 스스로를 옭아 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존이 행복하지 않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존 왓슨은, 셜록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이라고 해도 그 행복이란 것을 얻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그런 난리를 떨며 결혼식을 도왔다. 심지어는 메리의 전 애인까지도 만나서 다짐을 받아낼 만큼, 그렇게 존을 위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존에게 행복이라는 방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도울 수 있었다. 다만 이제 와서야 이렇게 자기혐오와 후회라는 쓸모없는 감정에 찌들어 있는 것은, 존이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그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행복의 손실인지를 조금씩 체감해 가고 있어서였다. 다분히도 이기적인 감정이 그 안에서 일었다.
*
플랫에 도착한 셜록은 거의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지난 번 까지만 해도 자신의 의자는 없고 존의 의자만 있었던 플랫에는 이제 존의 의자는 없고 자신의 의자만 남아 있었다. 도저히 카우치를 더 쳐다보지 못하고 셜록은 침실로 걸어 들어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자신이 자책을 하든, 어리광을 부리든 그건 이제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레드비어드는 죽었고, 존은 떠났다. 모든 게 그에게는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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