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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커미션 샘플 - 신청서 A타입

성 화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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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이 가장 어여쁘던.


 하나, 둘, 셋, 넷. 와이셔츠 단추는 어김없이 목 끝까지 채워졌다. 손끝은 익숙히도 목께를 휘 둘러 접힌 목깃을 펴냈다.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뻗은 다리 위로 살구색 스타킹이 올라오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손이 치마를 정돈했다. 손가락을 치맛자락 안쪽으로 넣었다 털어내, 그 끝이 무릎 반 뼘 위에서 예쁘게 사락거리도록 하는 것까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리 교복을 입는 일련의 동작은 퍽 유연했다. 교복 아래로 드러난 선만큼이나 우아했고. 보는 이로 하여금 - 보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 연습이라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화완은 늘 그런 아이였다. 제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에게 제 우아함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이는 봉오리여야 했다. 걸음걸음 고아함이 한껏 피어나 뭇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 없이도 누구보다 어여뻐야만 했다. 마치 모란꽃. 벌과 나비 없이도 아름다운 법을 알아, 끝내는 나비를 우습게 아는 모란꽃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이 손끝을 따라 가만 내리었다. 가슴 아래까지 단정히 앉은 머리를 얼마간 매만지더니 이내 귀 뒤로 넘겨 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새하얀 머리띠가 그 위로 얹히었다. 갈색 빛 하나 없이 칠흑마냥 검은 머리와 철저히도 대비를 이루는 머리띠였다. 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점호를 맡던 기숙사 장과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빼 놓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화완이 아는 이들은, 그 치가 그녀를 고깝게 여기건 어쨌건, 결국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흰 테는, 그녀와, 그녀의 교복과, 하나이기라도 하듯 썩 어울리노라고.


 비록 시험과 수업이 끝나, 그녀를 누구보다 돋보이게 하던 예의 교복은 더 이상 없었으나 그 머리띠는 새하얀 실내복과도 깨끗이 섞여들었다. 화완은 그런 제 모습을 거울로 꼼꼼히 살핀 뒤, 그런 대로 마음에 든다는 평을 내렸다. 샐쭉 올라간 입꼬리를 하고서는.




 독기마저 고고한.


 '꽃은 그 속에 숨겨진 가시 탓에 더 아름다운 법이다.'


 그리고 화완의 가시는, 한껏 드러낸 탓에 그녀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저를 꺾으려 드는 사람이건 어루만지려는 사람이건 날카로이 파고들어, 손끝에 피멍울을 맺게 하고야 마는 가시.


"거기 너, 조용히 해. 공부하는 거 안 보여?"


 자습 시간에 누가 작게 떠들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말이었다. 그리 콕 집어내어 망신을 주었으나, 창피로 벌게진 아이가 되받아치기에는 너무도 온당한 요구였기에. 그리 얄미운 말에도 마땅히 할 대꾸가 없게 만드는 재주는 그녀를 더욱 밉게 만들었다. 그런 덕에 3년간 화완을 알아 온 아이들 대다수는 그녀를 고깝게 여겼더랬다.


 물론, 그녀는 그런 사실을 알았다. 제 귀에 들으라는 듯 험담을 던지던 아이는 소수였으나 - 그럴 적마다 홱 돌아서서 퍼부어 주었더랬지 - 화완은 늘 제게 쏟아지는 시선과 원망과 마음들을 숨쉬듯 읽어낼 수 있던 탓이었다. 기실, 그녀는 그런 시기와 동경, 증오가 섞여든 눈길을 즐기기도 했다. 제 아름다움은, 착한 아이의 인형 속에서가 아닌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제일로 빛을 발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제 등에 으레 타고 오르는 악의 다분한 험담까지도 종내에는 선망과 질투로 수렴한다 믿었기에. 화완은 제게 서린 독기마저 아찔하도록 아름답길 원했다.


 사랑스러움? 아니지, 누구나 안을 수 있는 겨우 그런 곰인형 따위여선 안 되지.


 감히 좇으려 들지도 못할 만큼 고혹적이어야 한다. 객석에서 손을 뻗어 봤자 닿지 못할 무대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발레리나. 그게 저여야만 한다.





아, 정말이지, 그녀는 저를 미치도록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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